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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마라 대한민국!! 일본에도 중국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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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마 대한민국! 일본에도 중국에도(박종훈 플러스) - 박종훈의 경제한방


박종훈님은 외교의 중요성과 한 번의 실수가 어떻게 국가 경제와 국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합니다. 한국이 거란의 침략을 받았을 때 역사의 예와 서희라는 용감한 외교관이 어떻게 한국을 위해 성공적인 협상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어 지난 수년간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을 비교하며 한때 경제 대국으로 불렸던 일본이 과거 외교적 실수로 크게 쇠퇴한 과정을 비교했습니다. 이 비디오는 1985년 플라자 협정으로 인해 엔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으며 이 실수가 일본 경제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강조합니다. 이 비디오는 외교의 중요성과 한 번의 실수가 어떻게 오래 지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강조합니다.




서희(西熙, 942~998)는 고려시대의 외교관이다. 그는 특히 당시 거란이 이끄는 요나라와의 외교 관계에서 한국 역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서희는 942년 고려(지금의 한국)에서 태어나 총명하고 야심찬 청년이었다. 과거에 합격해 관직에 들어갔다. 외교와 협상에 대한 그의 재능과 기술은 그를 빠르게 인정하고 승진시켰습니다.


993년 서희는 고려와 요나라의 교섭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요나라는 고려가 조공을 거부하자 고려를 침략하였다. 서희는 요나라와의 교섭을 위해 고려 사절단의 단장으로 임명됩니다. 협상 과정에서 서희는 요나라가 점령한 영토 반환을 주장하기 위해 역사적 참고 자료와 지리를 교묘하게 사용했다. 그는 그 영토가 고려의 전신인 고대 고구려의 일부이며 역사적으로 한국 땅임을 강조했다. 그의 설득력과 외교술은 요 사신들을 감동시켰고, 그 결과 거란은 영토를 반환하고 고려와 평화를 맺기로 동의했습니다.


서희의 성공적인 협상은 고려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평화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가 영토를 확장 할 수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외교적 기량은 오늘날에도 한국에서 기억되고 연구되고 있으며 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한 명으로 여겨집니다. 이때 서희가 수복한 강동 6주의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특히 고려의 영토는 조선시대에 기록된 고려사 지리지에서도 동쪽으로는 고구려를 넘은 거대한 영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해서 현재의 많은 역사학자들이 고려의 실제 영토를 찾기위해서 노력중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고려의 북방 영토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자료가 고려사 지리지 서문에는 “사방 경계로는 서북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鴨綠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은 선춘령先春嶺을 경계로 삼았다. 무릇 서북은 그 이르는 곳이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으나, 동북은 그것을 넘어섰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하대 연구팀, 고려 서북쪽 국경선 새학설 제기 중국 요녕성 요하지역이라는 학술연구 결과 나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045599?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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